구봉서 별세 본문

스타-유명인 이야기

구봉서 별세

구봉서 별세 소식을 오늘 들었습니다. 저는 구봉서 개그에 대한 추억이 그리 크지 않지만 부모님, 할머니 세대들은 구봉서씨가 방송에 나오면 재미있어 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구봉서 사망 나이 향년 90세로, 1960년대부터 활약해왔던 원로 코미디언으로서 배삼룡, 서영춘 등과 함께 한국 코미디 역사를 이끌어온 거목 입니다.





'구봉서 별세, 명복을 빌며 좋은곳으로 가시길..'



1926년 평양 출생 입니다.


구봉서는 언제나 전성기였죠.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만 하더라도 400여 편이나 됩니다. 그리고 TV프로그램 및 라디오 출연을 다 합하면 1000편에 가깝다고 해요. 


얼마나 방송일에 열정이 있었고 이 일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많은 사랑 받다 가셨으니 본인도 만족한 인생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가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에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어 저는 분명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박장대소하면서 웃는 걸 볼 때 가장 행복해요. 그런 거 보면 코미디가 제 운명이지요."라는 구봉서의 생전 인터뷰.. 인기나 돈이 아닌 순수하게 코미디를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봉서 할아버지는 19살때 아코디언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데, 악사(약사 아님 ㅋㅋ)가 부족하다며 같이 해보지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길거리 캐스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당시'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던 김정구 형제가 소속되어있던 태평양 가극단에 있던 사람이 제의를 한것이라 어린 구봉서는 혹 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형 소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하지만 구봉서 아버지는 의사가 되라고 항상 이야기를 했고.. 당시에는 연극, 음악 하던 사람들이 딴따라라고 불리면서 엄청 하대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죠..




굉장히 엄격했기 때문에 고집을 계속 피울수가 없었는데.. 당시 구봉서를 데려가기 위해서 극단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사정사정을 해서 3일만 하라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3일하다.. 10일이 되었고.. 하루이틀 늘어나게 되면서 배우 한명이 그만두게 되었는데.. 땜빵으로 청년 구봉서가 무대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미리 습득해놓은 대사가 없었던 바람에 막 지어내서 대충 했는데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악사로 들어갔지만 그렇게 희극 배우가 되어버렸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구봉서 운명이 아니었을지......


나름 은수저 집안에서 부족함없이 자란 구봉서는 자신이 만약 그때 운명적으로 희극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몹쓸인간이 되었을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419 혁명 이후로 영화쪽이 좀 자유로워졌었다고 합니다. 5.16 이전까지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뒤로는 한동안 검열때문에 자유로운 희극 활동을 하기가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동아방송국이 생기면서 '안녕하십니까? 구봉서입니다'라는 프로그램(5분짜리 라디오 원맨쇼)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됩니다!"라는 구봉서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고 해요.



그리고 1969년에는 영화를 찍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구봉서가 주연을 한것인지 몰라도(너무 오래된영화고 제가 몰라서요ㅜ ) 희극배우가 주연이라고 B급 영화 판정을 줬다네요... 그래도 다행히 테헤란 국제영화제 나가서 작품상을 받았다고 해요.




구봉서 하면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일 것 입니다.  1969년~1985년까지 무려 16년 가까이 했던 작품이고.. 어르신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실정도죠.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등 원로개그맨들이 이때 전성기로 활동을 했습니다. 서로 웃겨서 웃음을 참을수가 없어 NG가 많이 났다고 해요 ㅋㅋ 당시에는 대본도 직접 개그맨들이 다 썼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애드립이 나오기도 하고.. 그거 받아칠 생각에 웃음이 날까 긴장할정도였다고 ㅋㅋ




구봉서는 남을 웃기기 위해서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남을 웃길려고 목표를 삼지 않았다고 해요. 사람들 공부도 많이하고 관찰도 하고... 각 직업별로 어떤 말투를 쓰는지.. 어떤 웃음코드가 일상에 숨어있는지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책도 상당히 많이 읽었다고 하지요.




구봉서가 가장 좋아했던 말은 "눈물나게 웃었습니다."라고 하네요. 구봉서는 코미디언들이 한국인의 수명을 늘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직업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던 시기라, 초등학생(당시는 국민학생이겠죠?) 아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구봉서' 이름을 써서 1위가 되어서 난리가 나기도 했다고 해요 ㅋㅋ



구봉서는 찰리채플린 처럼 슬픔과 눈물이 함께 할 수 있는 코미디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말초적으로 웃기기만 하는게 아니라 뭔가 삶의 메세지가 있는 것을 좋아했던 것 이지요.



한국 개그계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구봉서 별세 소식이 폭염이 끝나고 선선해진 후 하늘이 푸른날이라 그런지 그가 좋은곳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