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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자살이유 사주,자녀
오늘 10월 2일은 최진실이 하늘나라로 간지 8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죠... 최진실 아이들도 8년이나 지났으니 많이 컸을테지요.
이제 최진실이라는 이름이 많이 잊혀졌지만 과거에는 여배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최진실이라는 이름을 잊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구요..
연예인의 죽음 중에서 유독 최진실 자살이유 및 그 이후에 생긴 일들에 대해 글이나 의혹들이 많은 이유는 주변인물들이 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최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봅니다.
최진실은 40세의 젊은 나이로 한참 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을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성공했고 더 큰 사랑과 명예를 얻었던 최진실이었지만 그녀의 인생은 잠잠할 날이 없었습니다. 행복할까 하면.. 무슨 일이 터지고...
최진실은 1988년도에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을 통해서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것은 아무래도 '질투'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 후 ‘별은 내 가슴에’ 또한 큰 히트를 쳤었죠. 똑순이 스타일에 연기력 또한 훌륭해 어느 작품에 나와도 인정을 받던 스타였습니다.
스타 남매였던 최진실 최진영..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가슴아픈 사연은 여전히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최진실은 단순 톱스타가 아닌 전성기 당시에는 '만인의 연인'이란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국민 배우 였습니다. 최진실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중 하나가 광고에 나와서 했던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인데요. 저 한마디는 그때 전국적으로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쓰이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부러워 할만한 대스타가 되었고, 항상 명랑하고 쾌활한 이미지 였던 최진실이었지만 남모를 아픔과 슬픔이 숨어있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시절... 최진실 가족들은 연탄광에서 생활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최진실이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고.. 당시 야구스타 중 한명이었던 조성민과 결혼해서 이제 잘사는가 했더니.. 가정도 파탄다고.. 그 뒤로 수많은 루머와 악플에 시달리며 그녀의 삶은 조금씩 금이 갔습니다.
조성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해서 1991년 황금사자기에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합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일때도 야구선수 및 야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을 했을 정도로 유명인이었습니다.
일본 진출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아았던 1995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당시 최고의 팀으로 이적을 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1998년, 1999년에 오른쪽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게 되면서 하락세를 걷게 되었고 2002년 자진 은퇴합니다.
그러다 2005년에 한화 이글스에서 복귀를 했지만 2년만에 방출당하며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끝이 낫고.. 해설위원으로 잠시 활동하다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최진실과의 가정불화.. 거기다 폭행 사건에 까지 휘말리면서 조성민의 이름값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실 조성민 최진실 결혼은 양가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쉽지 않았는데.. 조성민이 당시에 자살시도까지 하면서 강하게 원했고 결국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최진실 엄마가 조성민의 궁합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좋지 않아서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도 있었지요.
(이 부분은 글 마지막에 링크 달아놓을게요)
당시 전치3주의 부상을 입었을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고 보도가 나오면서 조성민은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최진실의 결혼 생활은 참 다사다난하고 빠르게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2000년 11월 15일 혼인신고.. 그리고 곧바로 12월 5일에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한지 8개월만에 첫째 아이 환희를 낳게 됩니다.(2001년 8월 3일) 하지만 1년 후 2002년 12월 18일에 조성민의 이혼선언기자회견으로 파경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2003년 3월 1일 청담동에서 혼자 둘째 준희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혼을 했지만 이렇게 이왕 헤어지는거 서로의 축복을 빌어주자며... 나름 좋게 끝나는가 했습니다.
2014년 9월 1일에 최종적으로 협의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4년뒤.. 최진실이 갑자기 자살을 선택하게 되면서 친권 및 양육권을 놓고 최진영과 조성민으 충돌하게 되었고.. 두달뒤에 조성민은 친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지켰지만 삼촌자 최진실 남동생인 최진영이 1년 3개월 뒤인 2010년 3월에 누나의 곁으로 가게 됩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언제나 동생에게 엄격한 선생님 같았고 엄마같았던 누나 최진실을 잃고 마음고생이 상당히 심했을 것 입니다. 최진실 자살이유에 대한 추측 중 하나가 졸피뎀(수면유도제) 부작용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그것이알고싶다에 저 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쪽으로 추측이 나온것 같은데 우울증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그로부터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
조성민이 혼자 살던 오피스텔에서 또 목숨을 끊게 됩니다..
아래는 조성민 유서
그리고 세상에 남겨진 최진실 자녀..
특히나 딸이 악플에 엄청나게 많이 시달렸지요.. 저는 이때 또 한번 세상에는 청소되어야할 쓰레기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구나 하는것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저게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심한 소리를 하더라구요.
최진실 딸 역시 원래 가수가 꿈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포기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너무나 가혹했던 현실
어릴때 호기심에 인터넷 방송을 한번 시작했다가 사람들이 어른인 저도 역겨울 정도의 악플을 써대는 바람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 입니다.
최진실 아들 역시 방송쪽 일을 하고싶은데 최진실 엄마는 극구 반대를 하겠지요..
그리고 최진실 매니저 까지 숨진채로 발견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건 아래 두번재 글
밑에 3개글 다 읽어보세요.